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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분기 청운 독후감상문 우수작품(3학년 금상)
작성자 심가양 등록일 16.11.10 조회수 1101

2016학년도 2/4분기 청운 독후감상문 우수작품(3학년 금상)

 

 

<바람과 모래와 별>

 

3학년 김OO



생텍쥐페리의 생과 문학 세계에 대해 잠시나마 수업시간에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사막 가운데서 샘물을 만난 셈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수업시간에 생텍쥐페리의 별과 사막과 성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물처럼 유익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와 친구들은 별의 숫자를 열심히 세어 적은 후 서랍에 넣고 잠그는 것으로 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사막의 아름다움을 선생님과 생텍쥐페리로부터 배웠다. 어린 시절에 예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20살이 되기 전에 다른 작품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의 학교란 아무래도 어딘가 메마른 부분이 있었고, 그 목마름을 채워줄 물이 필요했다. 인간의 대지는 바로 그 샘물이었다.

먼저 이 책은 생텍쥐페리적 감성으로 나를 촉촉히 적셔 주었다. 사막에서 조난을 당해 힘든 와중에서도 페넥여우의 발자국을 보고 그 페넥이 달팽이들을 관리한 방법과 그 여우의 성품을 궁금해하는 생텍쥐페리의 모습은 웃음이 날 정도로 사랑스럽고 순수하다. 또 사막에 드러누워 별들의 꿈을 꾸는 모습이나 사막에 떨어진 돌들을 천상의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들이라고 생각하는 감수성이 아름다웠다. 이런 동화같은 면과 더불어, 그는 인간의 사랑을 깨우치게 하면서 나의 마음을 가지런하게 해 주었다. 특히 기요메와 생텍쥐페리가 각각 조난에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눈들 때문이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애타게 기다릴 사람들이 눈들의 환영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조난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무소식으로 인해 난파당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바로 그 책임과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랑과 책임을 약간은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었고, 어쩐지 책임이란 사랑을 얽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을 볼 때, 사실 사랑이란 얽매임 그 자체인 것이다! 기요메가 마지막으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실종은 사망처리가 되는 데 4년이 걸려서 보험사에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섰던 것은 분명 남겨질 아내에 대한 책임감이고 의무감이다. 그러나 그것을 진실된 사랑과 분리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느꼈다. 자신은 죽을지라도 시체가 발견되어 사망처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 처절한 걸음이, 그의 아내에 대한 눈물나는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동료들, 아내, 가족들이 자신이 걸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걸었다는 기요메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아마 모두가 그럴 테지만, 나를 믿고 있는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맺혔다. 그 차가운 눈과 얼음 속에서 기요메가 일어서듯이 나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을 힘을 얻었다.

사막에서 그들은 간절히 다른 인간의 화답을 바란다. 물과 음식과 생존을 위해서 다른 존재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환영 속에서까지 불러 보지만 그 외침이 쉽게 닿지는 않는다. 그 사람과 얽히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와 마주치려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저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현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모두 사막의 조난자처럼 서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현대인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옆으로 낙타를 탄 행단이 지나가도 돌아누워 쳐다보지 않는 사람같다. 이처럼 서로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그 끝에는 생명을 살릴, 그리고 생명 그 자체인 물과 사랑이 있을 텐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이렇게 사랑으로 적셔지면서, 식물이 비 온 뒤에 다시 싱그럽게 피어나듯이 성장하고 나아갈 힘을 얻었다. 생텍쥐페리의 실존주의와 행동주의에 대해 배우며 간략하게 들었던 '야간비행'에서, 조종사는 폭풍을 뚫고 우편기를 조종해 온다. 그게 조종사의 소용이며, 그 폭풍을 뚫고 가는 치열한 행동에서 인간의 실존을 발견한다는 말이 인간의 대지에서는 바로 '인간이 태어난다'는 말로 잘 설명되어 있음을 느꼈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드디어 인간으로 화한 순간은 정규 비행사가 되어 그 승객들과 우편물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라고 말한다. 겉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진흙 껍데기에 불과한 육체에 '정신'이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빛이 비치듯이 다가왔다. 험준한 안데스 산맥 위를 비행할 때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 죽음이 예견된 전투에 나가기 직전에 웃는 중사의 모습에서 인간이 태어남을 본다. 그래, 바로 그것이 우리가 늘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보석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오늘 자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구름다리 앞에 '7월 책속의 한줄'이 새롭게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나에게는 아주 신기하게도 바로 인간의 대지 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내가 살아돌아온 것은 한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라는 그 구절에 다시금 책을 가득 들고 기숙사고 걸어가는 내 발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인간의 태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언제가 될진 몰라도 바로 그 생명이 탄생할 순간을 위해, 폭풍을 뚫어서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 해도 나의 비행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을 위해 다시 한 발을 내딛어야겠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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